각의 온도
이준희
Metal Designer
2024. 01.17 ~ 2024. 02. 07
공예가는 반복적인 신체 활동을 통해서 물질과 재료를 단련한다. 공예가의 손으로 변형된 물질은 사물로 성장하고, 사물은 다시 공예가가 사물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공예가와 물질 간의 상호 작용은 우리가 공예를 누리는 방식은 물론이고 제작 환경과 유통 시스템의 변화까지도 이끈다. 금속공예가 이준희는 산업 공정에 최적화된 기성품 재료와 작업 효율을 높이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만, 공예와 수작업이라는 기본 원칙을 견지하며 손기술에 의존하여 제작 공정의 단계와 단계를 연결하거나 마감한다. 전체 형태를 세분하여 자른 후 정성껏 연마한 각각의 부품들은 리벳과 같은 작은 이음장치들을 이용하여 조립하고 손으로 마감한 후에 완성한다. 최근 사용하는 소재는 대표적인 산업 재료인 스테인리스강과 알루미늄이다. 비교적 저렴하고 비강도가 우수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재료적 특징 덕분에 두께는 얇아지고 무게는 훨씬 가벼워졌지만 날카로움은 남을 수밖에 없기에 적극적인 손의 개입으로 형태와 표면의 마감을 보완한다. 재료가 단단한 만큼 형태를 만들고 다듬는 손의 수고로움도 크지만, 그럴수록 각은 견고함을 유지한 채 완만해지고 표면에는 따듯한 온기가 감돈다. 차가운 금속판으로 만든 사물이지만 오래 곁에 둔 반려처럼 친근하고 묵직해 뵈는 것은 반복되는 연마의 과정에서 마찰을 일으키며 차분하게 가라앉은 물질의 빛 때문이다.
합리성과 효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손기술은 과거만큼 유용하지 않고, 엄격한 생산 공정과 일관된 품질 검수 아래 표준화된 사물들은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다. 표준화 시스템이 보편적 삶의 질을 향상한다는 것은 당 연하고도 중요한 사실이다. 그러나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이러한 시스템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은 물질과 재료가 가진 한계에 도전하며 제작 환경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공예가와 디자이너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잊는다. 애써 유지하기보다는 변화의 동인으로써 끊임없이 수작을 부리고 기술을 연마하며 나아가는 동시대 '젊은' 공예가들의 행보가 그래서 더욱 반갑다. 그렇지만 공예가의 태도만으로는 사물은 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 사물의 지속 가능성은 공예가의 진지한 손길과 사물의 이면을 살피는 소비자의 돌봄으로 가능하다. 그들의 열정과 관심의 온기가 식지 않는 한 공예의 지형도 변화와 성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