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작용이 가득한 방
박찬별
Artist
2024. 10.30 ~ 2024. 11. 23
제행무상(諸行無常) - 홍예지 미술비평가
너와 나. 함께 생겨나고 더불어 사라진다. 얽히고설킴에 고통이 있다. 그러나 이내 풀어진다. 나는 나 홀로 존재한 적 없다. 나 이전에 너가 있고 너 이전에 또 다른 너가 있다. 무수한 너에게서 태어나는 나. 그리고 나 다음에 오는 너. 너에게 내어 줄 내 몸은 언젠가 누군가에게서 받은 몸이다. 잠시 맡아 둔 몸의 수명(壽命)[2]은 너와의 상호작용에 달려 있다. 이 끝없는 주고받음 속에서 우리는 살고 변하고 죽는다. 사람과 사물, 우주 만물이 서로 주고받는 것은 힘이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에너지가 흐를 때, 몸이 그것을 받아 낸다. 너와 나는 일종의 용기(容器)다. 고정된 형태가 없는 빈 그릇이다. 담아 내고 쏟아 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몸이다.
박찬별의 <사물동사(Object Verb)>는 일상을 구성하는 수많은 몸-컨테이너를 지속적으로 관찰한 작업이다. 그는 인간과 사물, 사물과 사물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을 추적하고, 그 흔적을 보고 만질 수 있는 형태로 시각화한다. <사물동사(Object Verb)> 시리즈에 포함된 찰흙 조각들은 단순히 정지된 사물이 아니다. 계속해서 사용되며 변형되는 과정에 놓인 몸들이다. 전시는 그 순간순간을 포착함과 동시에, 맨눈으로 알아볼 수 없는 미세한 변화들이 축적된 결과를 보여준다. 여기 놓인 사물들은 모두 주고받는 행위의 주체이자 대상이며, 다음과 같은 일련의 동사들로 서술될 수 있다: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인다. 기울어지고 찌그러진다. 부풀어오르고 가라앉는다. 움푹 들어가고 불룩 튀어나온다. 빚어지고 부서진다. 매끈하다가 거칠어지고, 갈라지다가 붙는다. 위로 솟는다. 아래로 꺾인다. 다가간다. 물러난다. 밀어내고 당긴다. 받아들이고 내뱉는다…
“존재(being)란 없고, 다만 끊임없는 생성(有 becoming, bhava)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은 이전의 원인들이 빚어 내는 소산이며, 따라서 의존관계에 의해 생겨난(緣起生 paticca-samuppada) 산물이다.”[3] 이때 시간적으로 앞선 원인도 그 자체로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것이다. 박찬별의 작업은 이 모든 동적인 과정을 압축하고 펼쳐 냄으로써 현상계의 본질적인 속성을 관조할 수 있도록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