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After Corner


김선희
Light artist





2022. 09. 03 ~ 2022. 10. 01

표본실에 펼쳐진 빛의 전개도

새삼 전시와 설치에 대한 이야기로 서문을 시작해본다. 흔히 ‘디피’라고 줄여 부르기도 하는 설치 (display)는 평면 작가들에게도 무척 중요한 논리적, 미학적 연출 단계여서 공간의 크기나 벽 사이의 거리, 설치 방법 등에서 많은 제약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림 각각이 가진 독립성도 무시할 수 없어서, 그것은 제약을 극복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반면 조각이나 설치(installation) 작가들에 게는 그 자체가 ‘설치’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공간적 특성과 배치를 더욱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작품 하나하나에도 역시 독립성은 있지만, 아무래도 입체가 가지고 있는 방향성은 동선을 더욱 유도 하거나 교란하며, 원근에 의한 감상자와의 거리와 가림, 행동에 대한 허용, 시선과 빛의 통제 역시 작품 제작 단계에서부터 치열하게 고민되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이곳과 같이 서남향의 1층 자연광과 터널과 암실까지 구비한 말굽 모양의 특별한 모양의 전시장에서 빛과 면 사이의 가변성을 다뤄온 작 가가 전시를 한다면?

 

작업하는 모습을 포트폴리오, 레지던시, 스트리밍 등을 통해 어느 정도씩은 공개해 온 김선희에 대해 받은 부수적 인상은 과학자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부수적’이라고 하는 레토릭이 일면 조 심스러운 이유는, 작가에게 있어 작업 과정은 정말로 과학적인 절차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작업실 한쪽 면은 작가가 구상하며 시행착오를 겪어온 과정이 마치 프로토 타입처럼 한가득 붙어 있고, 이 는 그가 가설, 실험, 검증이라는 동적 과정과 관찰이라는 정적 과정에 정직하고 꾸준해왔음을 방증한 다. 더구나 작가는 이를 가리켜 ‘표본실’이라고 부른다.

 

작가는 우리가 빛을 마주하는 여러 상황들을 분석, 어떤 인위적 구조를 입체적으로 설정하는 열거를 통해, 빛의 투과와 분산을 채집하는 과정이 현상 인식의 다음 단계로서 표본화의 기록이 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선희의 작업실은 '빛의 표본실'이다. 빛의 표본실은 그러나 생물의 표본실이 지향하 는 박제와 보관, 즉 방부제적 성격과 정반대로 태생적이고 본질적으로 영원성을 가지고 있는, 그래서 흔히 찬양의 대상이 되는 빛의 도구성에 주목한다. 이에 따라 우리가 빛을 보고 느끼는 신비로움, 생 명력, 가벼움, 직선미 등은 1차적 주관임이 확인된다. 그것은 어느 정도 널리 합의된 주관이기 때문 에 사실 객관에 의지하고 있는 관점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우리는 대개 여러 광원이 있는 사이에 살아가고 있지만, 빛이 흩어진 천 공 사이에서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데, 그것이 집약적으로 구성되는 상황들을 실험하 면서 공간 안에 구성해보았다.”고 말한다.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는 말이지만, 곱씹어 생각해볼수록 재미있는 실험이다. 이는 빛의 물성에 대한 맹목적이거나 교조적인 관점이 아닌, 입체적 전개에 대한 의지이다. 즉, 빛의 세계에 대한 ‘경외’보다는 ‘초대’에 가깝다.

 

따라서 빛에 흉터를 내고, 일반적으로 여러 방향에서 광원이 온다는 점에 착안해 그것을 상기시키고, 프리즘의 다양한 반사각을 이용해 최상위의 표면을 찾으려 하고 물질의 긴장을 표현하려 하며 공허 함 속 아우라를 찾겠다고 하면 이야기의 차원은 달라진다. 그 노력은 2차적 주관을 만들어 냄으로써 비로소 빛이 가지고 있는 채움, 파장, 이동, 모호한 충돌들에 대해 풍부한 논의를 ‘전개’한다.

 

이렇게 볼 때, 이번 김선희의 개인전은 빛과 종이나 패브릭 등의 굴절면이 보여주는 교란을 통해 실 재와 부재에 대한 생각을 환기하는 최근 몇 년간에 대한 전시인 동시에, 넓게는 관찰과 실험이라는 과학자의 기본 문법처럼 닦아온 지난 15년간의 과정이 만들어 낸 조형적 문답이기도 하다. 이는 단 지 빛이라는 물리적, 시각적 요소에 대한 찬사나 집착을 새삼 강조하는 예술적 형언을 넘어 기본에 대한 더욱 기본적인 생각으로 그 차원을 당겨 인식의 구조 자체가 가진 군더더기를 제외한 상태에서 '당연함의 당연성'을 보게 하는 압축적 현장이다.

 

특히 김선희는 그 안에서 존재의 불안정하고 시행착오적인 속성을 경험하고 확인한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며 자연현상 또는 빛의 시간성을 매일 마주하며 겸손의 미덕을 체험함을 넘어, 자신이 파악하 고자 하는 실체의 언저리를 배회하는 도전적인 독백으로서도 본 전시가 기능하는 바를 설명한다. 따 라서 전시 타이틀인 “Light after Corner”는 앞으로도 꾸준히 빛과 표면에 대한 채집과 구상을 해 나갈 이의 포부이기도 한데, ‘기술적이고도 예술적인(artistic and artistic)’ 빛과의 씨름을 '거의 도 달한 지척(right after corner)'에 있으면서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본질적 속성에 은유한 것이라고 풀이해볼 수 있다. 그로 인해 빛은 막연하거나 엄숙한 '본질' 그 자체로서의 지위에서 한 단계 내려 와 즐거운 사유의 대상이 되는 본질 표상의 '대표적 재료'로 쓰임 받게 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빛에게도 중력과 장력이라는 물리적 특성을 대입해보게 하는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을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실험의 목적이 무엇인가. 활용이다. 그래서 의 외로 과학의 현장처럼 느껴지지 않는 편안한 전시장으로서의 배려도 여러 코너에서 엿보인다. 가령 터널형 통로를 통해 들어가며 어떤 이들은 폐쇄감이나 압박감을 느껴 그 안의 작품들에 대해 집중하 지 못할 수도 있는데, 김선희는 시그니처 가구이기도 한 ‘tension chair’는 그 이름만큼이나 창작자 와 감상자 간의, 공간의 압박과 여유 사이의 긴장, 즉 풀어지고 조여지는 리듬 사이에서의 적당함을 찾는데 능하다. 입체적 곡선면과 적당한 쿠션감은 앉아서 작품과 교감하고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시 간, 모빌처럼 달려 있는 곡선 작업이 주는 몽롱함. 빛이 직선적이고 발산하는 무엇이지만 한편으로는 따스하게 품어주는 물성을 구성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일종의 미덕과 여유다. 그 안에서 피어난 빛의 산실은 어둠 속에서 오라클로써 태동한 빛이라기보다는 숲 속에서 만난 달빛 같은 편안함이다.

 

그렇기에 북촌의 골목을 돌아들어와 코너 끝에서 문을 열고 들어온 방문자들은 이 전시장의 외적 위 치뿐만 아니라, 내적 위치에서도 ‘빛으로 가는 길’에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물론 물리적 인 길이기도 하지만, 빛이라는 속성으로 더욱 파고 들어가는 생각의 여정이기도 하다. 결국 이 야행 성 작가는 빛이 계속 움직이고 생명력이 느껴지는 것도 포기할 수 없었고, 여러분들이 빛을 들여다 보고 또한 눈으로 더듬으며 만질 수 있도록 하였다. “여기 어디쯤인데.”라는 말이 두리번거림이 아 닌, 똘똘한 설계자의 자신감처럼 느껴진다.

 

“공간적인 특성상,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은 감정적인 작업들인데 그런 작업들을 하기 위해서는 좀 더 표면적이고 실질적인 데 대한 논리적인 이해가 필요했기 때문에, ‘알아가는 단계’ 같은 재밌는 전개 가 있다는 점이 이 공간의 특징이기도 하다.”는 작가의 설명이 더할 나위 없이 멋있다. 막다른 길에 들어갔다 나오는 체험에서 ‘끝이면서 시작’인 빛을 담은 공간은 그 자체로 설치가 되고 사유가 된다. 그 끝의 코너를 돌면 또 무엇이 있을까.

 

글/ 배민영(예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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